언제부터 였을까.
한없이 옅을 그의 특유의 옅은 푸른빛이 도는 하얀색이 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분명 처음엔 호기심이였고, 그 다음은 미약한 경멸과 혐오. 그리고 최후엔-...
히지카타는 잠시 아득해지는 기분에 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거지. 저는 분명 검도부 후배의 누나인 미츠바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 마음은 어찌하고 저와 같은 성별인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인 건가.
이건 아냐, 비정상이라고.
히지카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곤 또다시 그를 찾는 두 눈을 창문 밖의 텅빈 운동장으로 돌리며 제 마음을 저 깊은 곳에 묻었다.
묻었다고 생각했다.
"토시오군-?"
"히지카타인데요"
힘빠지는 늘어지는 목소리와 습관적으로 틀리는 듯한 이름. 사카타 선생님. 히지카타가 이름을 정정하고 보란듯이 상대방의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며 덧붙이자 긴토키는 언제나 그렇듯 그게 그거지. 라며 가볍게 으쓱해보이곤 자기 할말을 하기 시작했다. 히지카타는 저도 모르게 그의 입으로 눈이 갔고, 그가 말을 하면서 벌려진 입 사이로 붉디 붉은 덩어리가 보였다.
아아, 저걸 제 손에 쥐어내어 희롱하면 그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소리를 낼까. 저의 이빨로 깨물어 잡아 당기고 빨아 당기면 저 느른한 표정이 어찌 바뀔까. 히지카타는 지금 당장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저를 부른답시고 또다시 다른 이름을 부르는 그의 입술을 집어 삼키고 싶었다.
"오쿠지군-? 듣고 있어?"
"히지카타 입니다. 그러니까, 출석부 확인 작업 도와달라는 거잖아요. 이런걸 학생한테 시켜도 되는겁니까?"
"뭐 어때. 괜찮아 괜찮아.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작년에도 학생한테 떠넘기신 겁니까..."
히지카타가 조금 질색하는 눈으로 긴토키를 쳐다보자 긴토키는 그 눈빛 조차 귀찮은 듯 벌레 쫒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얼른 일이나 하라고 재촉하곤 교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교무실 안은 창밖의 매미 소리와 교실 안의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차버렸고 그 소리에 작은 한숨 소리가 숨어 들어갔다.
위험했다. 라고 히지카타는 생각했다. 여름방학에 방과후도 모두 끝나 저와 선생님 밖에 없는 교무실. 바로 옆에서 조잘거리던 붉은 입. 특유의 달달한 냄새. 그의 모든것에 반응하듯 아래서 부터 고요히 끓어오르던 충동. 여름 더위에 뇌가 녹아버리기라도 한건지 조절이 되질 않았다.
"....젠장"
히지카타는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다가 결국 꿋꿋히 자기주장을 하는 자신을 깨닫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
"아. 까먹고 말 안한게 있었네"
캔 커피도 사고 겸사 겸사 담배를 피우고 땡땡이도 칠겸 잠시 교무실을 나섰던 긴토키는 교문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귀찮게시리.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린 그는 곧 방향을 틀어 다시 교내 자판기에서 급히 구입한 핑계거리인 캔 커피를 두잔 들고선 교무실로 향했다.
"-...--! ..-..,"
"...뭐야?"
교무실의 문 앞에 선 긴토키는 교무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잠시 멈칫했다. 억눌린 울음소리. 순간 긴토키는 귀신인가?! 하고 생각하며 작게 괴상한 비명소리를 냈지만 곧이어 교무실 안에 있을 한 사람을 떠올렸다. 설마 지금 울고 있는거야? 푹 하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 학생이?
긴토키는 주저앉아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겨우 참아내고는 가볍게 놀리기 위해 문을 열기 전 잠시 조금 열린 문틈으로 상황을 살펴 보았다. 욕을 하거나 이것 저것 때려부수며 울고 있을 거란 긴토키의 예상과는 달리 히지카타는 종이가 널부러진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울고 있었다. 뭐야 재미없게 그냥 다시 가야지. 긴토키는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대며 일어났다.
살짝 열린 문틈을 닫으려 마지막으로 힐끗 본 교무실 안에서는 히지카타가 고개를 젖히고 있었고 그로인해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였다. 울고 있던게 아니였다. 붉어진 눈가와 대조되는 푸른 눈동자에 어른거리는 물기와 달아오른 얼굴.
아.
집어 삼키고 싶다.
푸르게 빛나던 그의 모든 것들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며 긴토키는 제 안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무언가의 마지막 한 가닥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히지카타"
"-?!"
탁. 하고 캔커피를 교무실 문에 기대 바로 옆에 있는 수납장 위에 소리나게 내려놓은 긴토키는 느른하게 히지카타를 불렀다. 후끈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린듯한 느낌에 히지카타는 몸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언제부터?
저도 모르게 숨쉬듯 중얼거린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한 열기와 자그마한 떨림을 품고 있었다. 긴토키는 평소와 같이 느른하게, 그러나 확연히 다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중요해?"
진득하면서도 탁한. 그의 눈처럼 고요히 붉게 빛나는 듯한 목소리 였다.
/
"싫어. 선생님 제발, 그만-"
히지카타는 전부 하얗게 물들은 머리로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미묘하게 붕뜬 감각과 그로인해 알 수 없는 쾌감으로 변하는 고통. 수십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행위에 히지카타는 의미없는 소음을 내뱉으며 그에게 부탁했지만 긴토키는 그저 그의 새하얀 손으로 히지카타의 눈을 덮어 시야를 가리고 말할 뿐이였다.
"선생님이 아니라 긴토키라고 했잖아"
응? 히지카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눈이 가려진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얼굴이 바로 앞에, 혹은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그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어럼풋이 짐작했다.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 분명 날 조롱하고 있겠지.
히지카타는 속으로 자조하며 수백번 죽어버린 심장이 또 한번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파.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선생님, 선생님. 사카타 선생님. 긴토키. 부탁이야 차라리,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날 완전히 죽여버려 줘.
/
깜박. 깜박.
방과후의 양호실 안. 히지카타는 잠시 잠이 든 사이에 두 눈을 감았다 떠도 바뀌지 않는 시야와 양 손목과 눈두덩이 위로 느껴지는 낮선 감촉에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은건지. 반복된 행위를 통해 히지카타는 학습이라도 하듯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을때면 행위가 거칠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린지 오래였다.
드륵.
"......."
"....."
가뜩이나 조용했던 양호실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긴토키? 히지카타가 침묵을 깨고 저 말고 양호실에 있을 다른 한 사람을 부르고 나서야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타박이는 발 소리. 곧 이어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긴토키가 제가 누워있는 침대에 앉았다는 것을 느낀 히지카타는 괜히 움찔했다.
천 위에 드리운 그림자 위로 그가 평소와는 달리 닿은 부분이 데일것 같은 뜨거운 손으로 제 눈가를 쓰다듬는 손길이 어색했다. 눈을 가린 천을 벗길듯 말듯. 히지카타는 그의 행동으로 그가 제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이 있던게 아닌 다른 일이 있던게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긴토키, 괜찮아? 잇 사이로 세어나갈 것 같던 말들을 잘게 씹어 삼켰다.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병신. 속으로 저를 향해 읇조렸다. 병신 새끼. 그리 당했음에도 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 역겨웠다.
방과후의 양호실 안. 히지카타는 잠시 잠이 든 사이에 두 눈을 감았다 떠도 바뀌지 않는 시야와 양 손목과 눈두덩이 위로 느껴지는 낮선 감촉에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은건지. 반복된 행위를 통해 히지카타는 학습이라도 하듯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을때면 행위가 거칠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린지 오래였다.
드륵.
"......."
"....."
가뜩이나 조용했던 양호실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긴토키? 히지카타가 침묵을 깨고 저 말고 양호실에 있을 다른 한 사람을 부르고 나서야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타박이는 발 소리. 곧 이어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긴토키가 제가 누워있는 침대에 앉았다는 것을 느낀 히지카타는 괜히 움찔했다.
천 위에 드리운 그림자 위로 그가 평소와는 달리 닿은 부분이 데일것 같은 뜨거운 손으로 제 눈가를 쓰다듬는 손길이 어색했다. 눈을 가린 천을 벗길듯 말듯. 히지카타는 그의 행동으로 그가 제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이 있던게 아닌 다른 일이 있던게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긴토키, 괜찮아? 잇 사이로 세어나갈 것 같던 말들을 잘게 씹어 삼켰다.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병신. 속으로 저를 향해 읇조렸다. 병신 새끼. 그리 당했음에도 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 역겨웠다.
뜨거운 손이 눈가를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다른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를 행위가 침묵 속에서 또다시 반복 되었다. 평소와 같이 익숙해지지 않을 목소리로 전해지지 않을 단어들을 나열하고, 그의 이름에 매달려 끊길듯 말듯한 정신을 간신히 잇고 또 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그 이름이 아냐"
그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타카스키"
선생님이,
"타카스키 신스케다."
긴토키가 아냐.
/
익숙하던 거칠고 서늘한 손이 히지카타의 눈가를 스치고 귓가를 거쳐 천의 매듭을 향했다. 스륵. 하고 히지카타의 시야를 가리던 천이 풀리고, 눈 앞에서 검보라색 머리칼과 하얀색 머리칼이 교차했다. 히지카타는 그 하이얀 색에 매달리며 서서히 붉게, 더욱 붉게 물들고, 붉게 물든것들이 굳어 검게 변하다가
무너져내렸다.
히지카타는 비록 처음은 잘못된 관계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조금씩 고치고 맞춰나가며 올바른 관계로 같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제게 너무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이내 받아들였다.
오만이였고, 만용이였구나. 그는 처음부터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난 그저 장난감 이고 그는 그 장난감의 주인 일 뿐이였는데 조금 상냥해 졌다고, 걱정 좀 해줬다고 혼자 설레발이나 치고 선을 넘은거구나.
"하.... 하하하.."
긴. 긴토키. 아니, 사카타 선생님. 부탁이예요.
내가 착각하지 않도록,
"좀더, 물건처럼 다뤄줘"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속삭임을 듣고 그대로 표정이 굳어버렸다. 왜 그래? 히지카타가 야살스레 미소짓곤 다시금 속살거렸다. 웃어
우린 '그런' 사이잖아.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듯 했다.
/
두명만이 남은 양호실에서 긴토키는 결국 마지막에 정신을 놓아버린 히지카타를 더럽혀지지 않은 침대에 정성껏 눕혀놓았다. 두 눈을 감고 고른 숨소리를 감상하다가 평소처럼 자신의 특유의 낮은 체온으로 붉게 닳아오른 히지카타의 눈가를 식혀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까부터 할말이라도 있는건지 사라지지 않는 기척이 거슬려 결국 긴토키가 양호실을 나서서 문을 닫고 가로막듯이 기대서자 그는, 타카스키는 작게 웃어보였다.
"뭐"
"아니 그냥. 웃겨서 말야"
재미있을 것 같다며 가볍게 제안을 받아들인건 본인이면서 나한테 화를 낸다는 점이. 타카스키가 조금 비웃듯 말했지만 긴토키는 그저 침묵했다. 타카스키는 그런 긴토키를 보곤 비집고 올라오는 미소를 참지 않으며 말을 계속했다.
"이렇게 화낼거였으면 왜 내 제안을 받아들인거야? 특별히 협박 같은 것도 안 했고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제안을 한것 뿐이였는데 말야"
답이 돌아오지 않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독백같은 질문은 계속 되었다. 타카스키의 언행은 이미 선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였지만 긴토키 또한 그러했기에 그에게 어떠한 지적도 하지 않은체였다.
"혹시 두려웠어?"
긴토키는 속을 진정 시키며 반 이상을 흘려듣고 있던 타카스키의 말을 그제야 제대로 듣기 시작했다. 두렵다니. 무엇이? 긴토키가 입술 안쪽을 잘근하고 깨물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말들을 삼키고 붉은 눈으로 형형하게 타카스키를 바라보자 타카스키는 비죽이며 말했다.
"당신이 히지카타를 좋아한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게."
긴토키는 침묵을 지켰다. 타카스키는 침묵의 이유를 알것만 같은 기분에 결국 크게 소리내어 웃어보이곤 소리 없는 그의 대답에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인건 긴토키 당신이야. 작업자득. 그러니까, 내탓 하지 말라고. 물론 좀 심술을 부린것도 있어. 하지만 당신이 그랬잖아?"
타카스키는 소중한 추억이라도 회상하는 듯이 굴다가 제 기억 속 언젠가 긴토키 담당했던 수업 내용을 인용하며 말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셔버리라고."
검보라빛의 소름끼치는 미소가 진득하게 긴토키를 덮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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